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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드라마 시즌1 리뷰

인생조각 2024. 7. 17. 22:34

미디어에서 파친코를 처음 접했다. (뉴스, 광고 등..)

 

주제가 신선하다고 생각해서 유튜브로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애플 TV로 정주행 해서 보게 됐다.

 

드라마든 영화든 실화 바탕으로 한 내용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던 거 같다.

 

역사를 고증한 디테일한 표현도 좋았다.

 

책을 사서 꼭 보고 싶다.

 

장편소설이라 읽는 데 오래 걸릴 거 같아 느낀 점을 우선 적기로 했다.

(드라마 내용 설명은 스킵)

 

파친코의 시대 배경은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까지다. 4세대에 걸친 재일교포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을 사가면서까지 읽어보고 싶었던 것은 단순 역사 기록물처럼 그 시대에 있었던 일을 알려주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삶과 현대의 삶이 다르지 않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치에 따르라고 말한다. 한수의 가치관처럼 말이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것(아버지)을 대지진으로 잃어버린 한수는 소중한 것을 더 이상이 잃지 않기 위해 강자가 돼야 했다. 그 순간들이 모여 한수가 되었다. 내 짧은 인생 속에서 세상은 나에게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너의 자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누구도 너를 무시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최고가 되라고 말이다(한수처럼). 그렇게 바보같이 사람 챙겨가며 배려해 가며 하다가 그 꼴로 평생 사는 신세가 되지 말라고 말이다. 한수가 자기 아들 노아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엄마도 나에게 똑같은 것을 말했다. 명문대를 들어가 구박받고 가난한 이 신세를 벗어나자고..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말이다. 그 말은 항상 나에게 유혹이 된다. 내가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안락함을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빌빌거리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수의 가치관을 따라 그 방향으로 달려간다. 현대 사회에서도 부동산 대박, 주식 대박, 커리어적 대박,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통한 대박을 꿈꾼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순자에게 한수의 제안은 그 대박이 터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머니도 호강시켜 드리고 전쟁 중 자기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고 한수의 사랑도 받을 수 있다. 그녀는 그 잭팟을 거절한다. 자신의 신념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랬겠지만 지금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다. 거절하면 원래 살던 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선자는 더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한수는 순자의 거절을 듣고 멍청하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시대도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다 돈과 이익을 두고 고민한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어떤 직업이 나에게 수입을 더 많이 가져다줄지를 기준으로 고민한다. 심지어 인간관계에서도 나에게 무엇이 득이 될지 고민한다. 한수가 자기 중심성의 표본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 되기만 하면 그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마음 말이다. 이게 합리적이고 똑똑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이 세상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고 살고 있나? 내 신념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가?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나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살고 있진 않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전도사 이삭이 청년 노동자와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두려움이 자기를 지배해서 내가 세상과 구분되는 나의 윤곽을 찾을 수가 없는 게 어떻게 사는 거냐는 말을 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생존과 유익을 위해 살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세상이고 어디서부터 나인지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진 않았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절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건 과학이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채우는 도구로 주로 이용된다. 2차 세계대전도 그 결과물이다.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전쟁은 더 잔혹해졌다. 이기심을 채우면 채울수록 갈증만 더 강해질 뿐이다. 이기심을 더 강력하게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에 잠식되고 영혼은 망가지게 된다.

 

1989년 선자와 그녀의 손자 솔로몬의 에피소드도 과거 선자가 느꼈던 유혹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린 결단과 맥락을 같이한다. 선자의 결단에는 대가가 따라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념적 결단에는 대가가 따른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 다른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반하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기 위해 그 고난을 견딘 선자의 역경 스토리는 아름다울 수뿐이 없다. 어둠 속에 빛나는 빛과 같았을 것이다.

 

나는 크리스천으로 이 세상에서 신앙적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수많은 유혹이 나를 찾아왔다. 편하게 살라고, 오버하지 말라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도 잘 산는 거라고 말이다. 교회나 말씀 보는 것에 그렇게 시간 허비하지 말라고, 너 것을 챙기며 살라고 말이다. 엄청 바보 같은 행동인데 그 신념을 지키며 매일 기도와 큐티를 생활화하고 교회를 다니며 그들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챙겨줬던 것들.. 너무 잘했단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나 스스로도 바보 같았는데 그것들이 모여 더욱 괜찮은 '나'를 만들고 진정한 '나다움'을 알게 해 줬다. 그리스도인들은 선자를 보고 찔림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 생명에 위협이 가해진다 해도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행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이다. 선자의 이야기는 이 유혹과 갈등을 이겨내온 내 삶에 큰 위로가 되었다.

 

소설 파친코 등장인물, 시대배경, 느낀점 등..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