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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인생사 - 소설 파친코 리뷰

인생조각 2024. 8. 7. 21:00

드디어! 그렇게 궁금했던 파친코 1,2를 완독 했다.!
약 400page가 되는 책 2권을 읽는데 3일이 걸렸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장편소설을 읽은 적은 없었다. 아니.. 장편소설 자체를 읽어본 적 없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엄청나게 몰입감 있는 소설이었다. 묘하게 한국적인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파친코1 커버

 
파친코를 드라마로 처음 접했다. 내용이 흥미로워 저자를 찾아보게 됐고 그녀의 다큐까지 찾아봤다. 저자: 1986년생 이민진, 그녀의 부모님은 딸 3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그들의 둘째 딸이었고 책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그녀는 자신을 '너드'였다고 소개했다. 예일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2년 정도 살다가 책을 쓰고 싶어 퇴사했다. 그녀에게 많은 영감을 줬던 수많은 책들처럼 그녀는 누군가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 대학시절 강연에서 그녀는 자이니치에 대해 알게 됐다. 일본사회에서 조선 혈통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그녀도 재미교포로 살면서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녀의 삶보다 훨씬 지독했다.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뉴욕예술재단 지원금을 받아 그들이 당했던 무시와 말살을 어떻게든 알려야겠다 생각했다. 초안을 적어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현실감 있는 삶이 아닌 거 같았다. 마침 남편이 도쿄의 일자리를 제안받아 그곳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재일한국인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방향을 잘못 잡았단 생각이 들어 원고를 다시 썼다. 그녀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소설가가 아닌 역사 연구가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 모진 인생을 살아온 재일 한국인들을 존경했다. 그들의 삶은 세계에 알려질 만큼 위대했고 가치가 있었다. 이미진은 앞으로 계속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한국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사명감이 있다고 했다. 책의 제목을 '파친코'라고 한 이유는 그녀가 인터뷰한 재일한국인 대부분이 '파친코' 사업이랑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업신히 여기는 사업이지만 자이니치들이 살아가기 위해 선택할 수뿐이 없었던 사업이었다. '파친코'라는 단어는 지이니치 삶의 상징이었다. 그녀는 30년간 이 책을 썼고 2017년에 비로소 발행된다.
 

저자 이민진

 
저자가 소설가지만 역사학자처럼 집요하게 디테일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사명감도 멋있었다. 개인적으로 자기 위로와 감정에 치우친 글을 좋아하지 않아 소설이나 문학작품에 흥미가 없었다. 영화도 실화 바탕으로 각색한 내용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그 점에서 '파친코'는 흥미로울 수뿐이 없는 책이었다. 이민진은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그것이 목소리를 내야 할 일이라면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 해요" 누군가를 설득하기에 논리적인 말과 주장은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인종 차별을 금지해야 합니다! 옳지 않아요 왜냐면 ~ (근거 자료 제시)" 방식으로 얘기했다면 어쨌을까? 마치 논문을 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에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을 거 같다.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널려있다. 그 이상은 현실과 괴리감을 형성해 자신과 상관 없는 일처럼 느끼게 한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에 지식으로 바꿀 수 없다. 옛날에는 논리적 말하기, 글쓰기가 상대를 설득하고 내 주장을 이야기하고 각인시키는데 중요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전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로 전함으로써 가슴을 울릴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등장인물 및 배경

1910 ~ 1989년까지(일재강점기 ~ 해방 이후) 시간의 흐름대로 4대에 걸친 자이니치의 삶을 그리고 있다. 양진은 아주 가난한 집 막내딸로 태어나 시집가기 막막했고 결국 마음씨 착한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결혼한다. 그들은 부산 옆 작은 섬인 영도에 산다. 이 둘 사이에 아들이 3명이나 있었지만 얼마 못 가 죽었고 마지막에 선자가 태어난다. 그녀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영도에서 하숙집으로 먹고살지만 부부는 사랑과 애정을 듬뿍 주며 키웠다. 그렇게 선자는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여성으로 컸다. 그녀의 첫사랑 한수, 그녀의 남편 백이삭, 백이삭의 형 요셉, 요셉의 아내 경희, 선자의 첫째 아들 이삭(한수와 선자의 아들), 둘째 아들 모자수(이삭과 선자의 아들), 손자 솔로몬 (모자수 아들)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수는 그가 모시는 야쿠자의 딸과 결혼했고 딸이 3명 있다. 그는 제주도 출신이다. 이삭은 양반가 자식으로 막내아들이다. 몸이 허약하지만 신념은 강하다 신학을 배워 전도사가 됐고 평양에서 형 요셉이 살고 있는 오사카로 가기 위해 부산에 머문다. 경희는 양반집 딸로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컸다. 일본에서 경희와 선자는 서로 친자매처럼 지내며 서로를 의지한다. 요셉은 과자 공장의 관리인으로 일한다.
 

줄거리 요약

1910년대의 부산 영도에서 시작된다. 선자는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며, 그녀의 가족은 하숙집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선자는 제주도 출신 일본 남자, 한수에게 첫사랑을 느끼지만, 그가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임신한 선자는 전도사인 백이삭과 결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들은 일본에서 한국 이민자로서 차별과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지만 사랑과 희망으로 이겨냅니다. 선자의 아들들과 손자들은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일본에서 살아가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선자의 아들들은 파친코 사업을 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게 되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 속 차별과 편견 안에 살아갑니다. 

 

느낀 점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한다.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단호한 문장에 힘이 느껴졌다. 그래도 상관없는 인생의 주인공은 선자였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생활력과 강인함은 한국인들을 대표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우리 외할머니도 작고 볼품없는 몸이지만 죽기 살기로 살아오셨다. 할아버지가 돈을 못 버셨지만 동대문시장에 옷을 팔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그들의 생존력은 칭찬할만하다. 나도 그 피를 이어받은 거 같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학창 시절 아이들의 편 가르기도 있었다. 양진과 훈이는 선자를 귀하게 키웠지만 난 엄마의 비난과 질책을 받으며 자랐다. 사람들은 어떤 기준을 세워서라도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같은 한국인이어도 말이다. 첫째 딸이었던 나는 노아처럼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이 악착같은 생존력에 저자는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 이면의 모습도 난 알고 있다. 나는 성공해야만 했다. 생존에 방해될만한 어떤 모험도 해서는 안 됐다. 외할머니는 자수성가했기 때문에 그분의 말에 복종해야 했다. 온 가족의 기대 속에 큰 딸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나'라는 정체성보다 생존이 중요한 한국인의 삶이 이해는 되지만 나에겐 버거웠고 비인간적이었다. 이런 고난 속에서 정체성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싸워 살아남았다. 절대 정체성을 생존이라는 이름 아래 두지 않겠다고.. 그 끈기와 정신력은 외할머니와 엄마한테 물려받았다. 한국인의 강점인 '끈기' '오래 참음'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를 찌르는 칼이 될 것이다. 나도 그러기 위해 배려와 겸손을 항상 먼저 생각해야겠다. 
 
한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고 이삭은 이상주의자다. 나도 선자처럼 이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하면 이삭을 택할 것이다. 그 당시에 둘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만 할 상황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한수가 나쁜 놈인걸 알아도 잊지 못하는 선자처럼 편안함과 안락함은 너무나 달콤하고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이삭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아무리 내 생존에 도움을 준다 해도.. 나는 내 정신이 정직하고 편안한 게 더 중요하다. 지금 내 삶도 그렇게 살고 있다. 이삭만큼 지독한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지나친 이상주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버거워 부러지게 된다. 그게 정답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 지독하게 적응하는 거만큼 인간성을 버리는 일이 없다. 나는 과정, 의도 >>>> 결과 인 사람이다. 얼마 전 회사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인가?"를 스스로 질문한다고 이야기했더니 어떤 분이 그렇게 살면 삶이 너무 복잡해지고 아무것도 못할 거라는 말을 했다. 대부분 이런 질문 없이 삶을 산다. 나의 가치를 지키며 사는 것은 내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선택하는 삶을 살자
 
이 책을 보며 왜 그렇게 할머니, 엄마가 성공에 목숨을 걸었는지 알 거 같다. 남들 눈에 띄면 왜 안되는지도 알거 같다. 주목받아 좋은 인생이 한국엔 없었다. 한국 역사를 보면.. 모험하고 도전하는 건 사치였다. 강대국 사이에 치이는 역사속에 살아남으려면 조용하고도 꾸준히 성실하고 참고 인내해야 했다. 부모님과 할머니 세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그게 정답은 아니다. 생존과 거리가 있어보이는 도전, 창의, 존재론적 질문 들이 필요하다. 서로 조화를 이뤄갈 수 있도록 엄마랑 대화를 잘 해봐야겠다

 

"노아는 규칙을 모두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면 적대적인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노아의 죽음은 그런 잔인한 이상을 믿게 내버려둔 선자의 잘못일지도 몰랐다" 노아의 죽음은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노아는 일본인들이 조선인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편견이라 믿었고 그러기에 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려면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실제 조선인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최선을 다해 그렇게 살았다. 자신이 한수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야쿠자의 자식인 그는 더이상 일본인들에게 너희 생각만큼 조선인이 더럽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선자는 이런 노아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조선인은 일본에서 더럽고 야쿠자에 소속되어있기도 하다. 그들은 생존해야했기에 그 모습으로라도 살아야 했다. 그게 현실이다. 노아는 그렇게 해서라도 살고싶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나도 노아랑 비슷한거 같다.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분을 배반했다. 너무 치욕스럽고 감당이 안됐다. 나는 또 다시 죄를 지을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못한다. 내 자신의 추악함, 거기서 앞으로 벗어나지 못할 나를 마주하는 순간 너무 괴로웠다. 내가 앞으로 아무리 잘해보려해도 내 정체성은 죄인이었기에..하지만 난 예수님 때문에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애초에 그런 존재인걸 알았기에 예수님을 보냈고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아도 신앙이 있었다면 자기의 정체성을 미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마음에 안타까웠다.

 

"일본이 전쟁에서 졌거나 나쁜 짓을 저질러서 이 나라가 개판이 된 게 아니야. 더 이상 전쟁이 없는 데다가 평화로운 시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보통이 되고 싶어 하고 남과 달라지는 걸 두려워해서 이 나라가 개판이 된 거야." 난 남들과 달라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하고 싶었다. 대중이 맞다고 생각하는 통념이 너무 가벼워서 동조할 수 없었고 그렇게 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다는 건 모든 일에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선택의 순간에도 나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그때 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평균이 되면 조금 편하게 살 수 있다. 지금 한국도 평균에서 벗어나면 삶이 힘겨워진다. 남을 설득하고 설명해야된다. 그게 지치고 힘들어서 그냥 그들과 같은 사람인척 반응했던 적도 있다. 일원화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전 여기서 살고 싶어요 솔로몬이 말했다. 피비는 그렇지 않고요" 솔로몬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다. 여자친구 피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사랑해도 솔로몬은 이름처럼 현명했다. 솔로몬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도 내 근간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도 상대방에게 그럴 것이다. 나를 버리면서까지 상대를 얻고자 하는건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