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티비가 없다. 가끔 유튜브 뉴스로 세상 소식을 듣는다.
조용한 사색을 즐기는 나에게 티비는 너무 과하다. 반면 우리 가족은 티비보는 걸 너무 좋아한다. 뭔가를 할 때 항상 티비를 틀어놓고 있다. "나중에 독립하면 꼭 티비를 없애야지"라는 생각을 바로 실현했다. 이번에 우연히 가족 여행과 올림픽이 겹치면서 경기를 보게됐다. 한국 선수들이 예상과 다르게 선전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저녁마다 올림픽을 보고 있다.
오늘도 탁구, 역도, 골프, 태권도 등 다양한 경기를 봤다. 선수들이 아쉬워할 때마다 마치 그들과 하나가 된 것처럼 내 표정도 일그러졌다. "아 너무 아쉽다" "어떡해..ㅠ" "으~~"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역도 김수현 선수가 심판 판정으로 자신의 최고 기록이 무효처리 됐다. 너무 안타까웠고 심리적으로 선수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여태까지 올림픽을 많이 봤지만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스포츠에 관심이 별로 없어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올림픽은 단지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가 하나될 기회로 생각했었다. 2002년 월드컵처럼 말이다. 때문에 성적이 좋아야만 의미가 있었다. 낯선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게임이 필요한 것처럼 스포츠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생각했다. 올림픽은 세계인들의 축제라고 하는데 잘 이해가 안 됐다. "이런 걸로 세계가 화합할 수 있나?" "아이스브레이킹 정도로 게임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지 않나?"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하는 건가?"
이번엔 달랐다.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할 때 함께 아쉬웠고 승리할 때 나도 기뻤다. 한국 선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선수들이 준비한 만큼 잘했으면 좋겠단 생각까지 들었다. "아 ~ 이래서 올림픽을 세계의 축제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선수들끼리도 서로가 보내온 노력의 시간을 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누군가의 아픔, 기쁨에 공감하고 진심으로 격려해줄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어 너무 기뻤다. 내 생각이 넓어지고 성장했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뛰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아픔에 무감각했다. 나도 남들처럼 진심으로 누군가를 격려하고 함께 아파하고 싶었지만 내가 경험한 것 이상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러한 변화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나에게도 여러 가지 아픔이 있었다. 가족과의 갈등, 업무, 결혼, 교회에 대한 회의감 등.. 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고 좌절도 있었고 나만의 길을 찾기도 했다. 그 과정들을 통해 경험의 폭이 넓어지니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 사실 가장 컸던 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때 오는 깊은 연대와 기쁨을 경험한 시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작은 공감이 내 마음에 큰 위로를 줬던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업무에 있어서 회의감이 올 때 회사 동료 몇몇이 자기도 그렇다고 해주는 공감,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마음이 힘들 때 교회 사람들이 줬던 공감 등이 컸다. 이런 공감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관계가 주는 충만함이 뭔지 알게 된다. 많은 돈과 예쁜 얼굴, 넘볼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전혀 부럽지 않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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