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매일의 기록

[일상]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인생조각 2024. 8. 5. 19:13

토요일에 파친코 1,2 소설을 샀다. 소설 읽을 생각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설렜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읽었다. 그 소설에 빠져들 때 그간 위를 아프게 했던 가족, 진로 고민들이 사라지는 거 같았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니 지나치게 구체적인 설명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만 생각했다. 에이포 용지 한 장이면 끝날 얘기를 엄청 길고 세세하게 풀어 적었다.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세세한 묘사가 필수인듯 싶었다. 중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소설의 맛을 오랜만에 겪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내용이 재밌어서 금세 다시 빠져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읽다가 시계를 보니 딱 교회 갈 준비할 시각이었다. 그렇게 반쯤 감긴 눈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버스정류장에 다 달았다. 15분 뒤에 오는 버스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보기로 한다. 공기가 매우 습하고 더웠다. 빨리 버스가 왔으면 했다. 집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온몸이 찐득거렸다. 벌레가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날씨였다. 다행히 버스는 재시간에 도착했다. 버스를 탔을 때 느껴지는 에어컨 바람이 산뜻하게 느껴졌다. 3~4 정거장 뒤에 버스에서 내렸고 다시 동남아 같은 여름 날씨를 온몸으로 느꼈다. 이제 지구에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 모든 게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자기 욕심을 컨트롤하지 못해 같은 종족을 멸종시키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나도 그 인간 중에 하나이기에.. 나와 함께 이상기후를 느끼고 있을 동식물에게 미안하고 이 상황이 한탄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구온난화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혼자 변화를 이뤄낼 수는 없었다.

 

무력한 마음으로 교회에 도착했다. 동시에 찬양이 시작됐다. 주어진 시간 동안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앞자리에 앉았다. 난 예배 전 찬양을 좋아한다. 평소 노래에 관심은 없지만 현장에서 찬양할 때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뭔가가 있다. 예배 집중도 더 잘된다. 역시나 오늘도 그랬다. 찬양가사처럼 내 인생이 의미가 있길 간절히 바랐다. 설교 제목은 '뜻을 정하여'였다. 가족 여행 후 마음이 쉽지 않았지만 지혜롭게 말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안에서 지혜롭게 가족관계를 풀고 싶다는 뜻을 정했기에 이를 위해 설교 말씀처럼 하나님이 지혜를 주실 것이다. 여태까지 내 인생도 그래왔다.

 

설교가 끝나고 교회 사람들끼리 나눔을 하러 갔다. 이 시간이 난 제일 좋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던 솔직한 일주일을 이야기하는 이 시간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는 것도 재밌게 느껴졌다. 교회를 바꾼 지 4달 정도 됐는데 벌써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모임을 우린 목장이라 부르고 목장의 장을 목장 짱이라 부른다. 나는 웬만하면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깊은 관계라 하면 상대방에게 의지하게 되는 관계, 상대가 너무 특별해지는 관계를 말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깊은 관계는 딱 2번이었다. 가족, 20대 중후반 때 남자친구 그 둘이 전부다. 두 관계 모두, 난 최선을 다했고 신념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마음을 준 만큼 아픔도 컸다. 특히 교회 안에서 했던 내 연애는 특별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헤어진 이후까지 같은 공동체에 있던걸 생각하면 도합 10년이었다. 그 긴 역사와 아픔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했을 때 다들 안타까워했다. 나는 누군가 이런 경험을 안 하길 바랐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교회에 있을 때도 내 마음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외로웠다. 빨리 벗어나야 할 터널이었다. 

 

그런데 목장장 언니의 나눔을 들어보니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 같은 교회에서 연애를 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괜찮은줄 알았는데 이제야 아픔이 쏟아졌다고 했다. 나는 헤어진지 1년 만에 아픔을 느꼈는데 그거에 비하면 언니는 약 한 달 만에 느끼는 거라 양호한 상황인 편이다. 하지만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전 남자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끈질기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에 많은 인내가 필요함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울고 있는 언니 얘기를 들을수록 가슴이 시리게 아팠다. 마음대로 내 마음을 정할 수가 없어 답답한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그걸 누군가 또 경험하며 아파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위가 따끔따끔해졌다. 이럴 때 말하라고 이런 경험을 하게 하셨나 싶어 내가 극복했던 방법을 알려줬다. 누군가에게 내 경험이 위로와 도움이 된다는 게 기뻤다. 그 언니는 지금 분명 외로울 것이고 이 터널을 빠져나갈 방법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하니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로 위로할 것이다.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홀로 서있는 듯한 그 상황이 얼마나 고독한지.. 내가 그랬다. 언니는 굉장히 고마워했고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후에 언니의 가정환경이 나와 비슷함을 알게 됐다. 언니는 둘째였는데 그 언니의 언니는 나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이 자기에게 행하는 언어폭력에 지쳐서 단톡방에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고 했다. 나도 이번 가족 여행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이걸 가족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 중이라 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지금 이 교회에서 공동체와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다.

 

꽉 찬 하루였다.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하고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싶다. 직장인들은 이런 걸 느낄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일만 하다 쉬기 바쁜 하루를 보낸다. 정신과 육체 모두 건강하지 않지만 생존을 해야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소설과 교회 나눔으로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공동체가 뭔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가 거의 10년 만에 응답되었다.. 하나님은 스스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나를 만드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