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별거 아니야 긴장할 필요 없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오늘은 중간평가 결과로 팀장님과 면담이 있는 날이다. 상반기 프로젝트에서 안 좋은 피드백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 있을 수도 있잖아? 내 관점이랑 팀장님의 관점이 다를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드백의 의도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이 생각을 떨치고 싶었다.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 같은 내 모습이 한심하기도 했다. 어떠한 평가를 한다 해도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면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 설사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고 해도 평가 결과가 내 가치를 대변하진 않는다. 그저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실 뿐이다. 옛날에 비해 마음이 많이 진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지금 업무 방식에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인거 같다. '평가'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이 있다.
평가받는다는 건 회사의 이익을 기준으로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더 매력적이려면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지 이야기한다. 남자에게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남자의 기준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남자에게 저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보여야 할까?" 싶을 수도 있다. 남자의 기준에 관심 없다면 결혼 시장에서 나오게 된다. 시장의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다. 나만의 기준과 신념으로 해나갈 수도 있고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돈 버는 구조에 동의하지 않으면 나올 수 있다. 나만의 기준과 신념으로 돈 버는 구조를 만들 수도 있고 돈을 벌지 않기로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회사의 평가에 내 커리어가 달려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남자친구와 관계가 틀어졌다고 모든 남자들이 그와 같은 생각인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가치나 생각들이 있다. 대다수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수에게 맞출 수 없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억지로 맞추다가 '나' 자신을 잃게 된다. '나'를 잃고 남자한테 전부 맞추는 것만큼 위태로운 연애는 없다.
다행히 오후에 있던 미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평가에 적어주신 내용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물어봤고 맥락을 파악해서 듣게 되니 안심이 됐다. 자욱한 안개가 걷혀 시야가 깨끗해졌다.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그걸 왜 해야 하는지 그걸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듣게되니 달려갈 길이 보이는 듯했다. 팀장님은 전문분야를 정하면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석사 할 당시 베이지안에 관심이 많았다. 굉장히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적용할 기회가 너무 없었다. 베이지안을 불확실성을 모델링하는 영역으로 확장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해주셨다. 이를 적용한 사례들을 보며 앞으로 있을 프로젝트에 적용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이 주제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추천해주셨고 그걸 활용할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힘들고 버거웠던 마음에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들 중 하나를 오늘 발견하게 됐다. 이것저것 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과 중점적으로 해야 할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선이 분산되니 몰입이 깨지고 해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컸던 거 같다. 이번 면담으로 그 부분이 해소되니 다시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들을 통해 얻는 게 참 많다.
지금 하는 일을 다시 잘 해봐야겠지만 여전히 제2의 직업을 가지는 건 필요한거 같다. 멘탈 관리하기도 좋고 책을 쓰고자하는 명확한 비전이 있다. 책으로 하는 일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시작단계지만 차근차근 밟아나가다 보면 결실을 맺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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