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매일의 기록

[일상] 가족+여행 = 고통은 당연하지만 아프다

인생조각 2024. 8. 3. 18:22

내 종아리에 화상자국이 있다. 어릴 적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실수로 뜨거운 물을 쏟아 생긴 자국이다. 자국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내 몸의 일부가 됐다. 가족도 이 화상자국과 같다. 태어나보니 맺어져 있던 관계가 준 상처가 상흔으로 남아있다. 가족들은 습관적으로 내게 상처를 입힌다. 스스로 어떤 말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화상자국은 그 이후에 다른 자극을 주고 있지 않아 옅어졌지만 가족은 죽을 때까지 서로 상처를 입히는 관계여서 그 자국이 진하게 남는다.

 

이번주에 1박 2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가족'관계도 힘든데 '가족'과 '여행'이 합쳐져 더 어려워졌다. '가족'과 '여행'의 특징이 무엇이기에 합쳐졌을 때 문제가 된 걸까? 각각의 특징을 생각해봤다.

 

가족

  • 가장 가까운 관계
  •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관계
  • 가장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관계
  • 서로의 단점을 잘 아는 관계
  •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계

여행

  •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
  •  낯선 곳에 가는 일

이러한 특징 때문에 여행은 친한 친구랑 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실제로 친구랑 갔다가 싸우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친구는 위험하다 싶으면 같이 여행을 안 가면 되는데 가족은 그럴 수 없다.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가고 싶어 했다. 참여하지 않았을 땐 강한 비난과 항의를 견뎌야 했다. 가족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은 그렇다. 단체 생활을 통한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인의 개성보다는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 집중한다. 특히 날 힘들게 하는 건 엄마가 원가정에서 받았던 상처다. 거기서 받았던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은 결혼에서 만든 새로운 가정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싫어 결혼으로 독립했지만 내가 볼 땐 외할머니의 안 좋은 점을 그대로 받아왔다. '스스로 항상 맞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하는 점',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아 안정적인 방법만 고집하는 점',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돈과 생존을 1순위로 여기는 점'에서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결혼이 두려워진다.

 

이번에 다녀온 가족여행은 2박 3일이나 다름없는 1박 2일 여행이었다. 첫날에는 엄마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잤다.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오대산으로 출발했다. 산을 좋아하는 나는 오대산이라는 장소도 좋았고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했다. 동생이 임신한 탓에 내가 주로 움직였다.. 사실 동생이 임신한 것과 관계없이 나는 항상 눈치 없고 둔하고 일 안 하는 사람으로 찍혀있었다. 빠릿빠릿한 성격이 아닌 건 맞지만 나도 매일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휴가 때만큼은 쉬고 싶었다. 근데 동생이랑 엄마는 왜 나를 부려먹지 못해 안달인가? 이번 여행에서 갈등의 발단도 이 부분이었다. 

 

엄마가 하는 말 중에 젤 힘든 말이 있다.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라는 말이다. 이 말을 정말 많이 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항상 남 탓을 했다. 첫째 날은 비교적 잘 보냈다. 오대산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숙소를 잡고 그 앞 계곡에서 발 담그고 있다가 고기를 구워 먹었다. 엄마랑 동생은 제부한테 미안했는지 나에게 단호한 눈빛으로 "같이 가서 고기를 구워라", "설거지를 네가 해라"고 말했다. 남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엄마는 항상 가장 편한 딸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며 표현했다. 엄마는 눈치가 너무 없다고 한심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엄마는 차라리 내가 고생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날 귀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난 살면서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아빠가 많이 사랑해 주고 예뻐해 줬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결국 가만히 앉아서 제부가 주는 고기를 받아먹기만 할 수 없었던 나는 제부 옆에서 얼쩡거리며 부채질도 해주고 고기 접시를 날랐다. 이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제부가 있어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비교적 거친 말들을 잘 참았고 순종했다.

 

마지막날 아침이 되었다. 엄마 아빠랑 아침밥을 준비하고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제부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쨌든 남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 같이 놓고 먹는 자리에서 내가 지저분하게 먹을까 봐 깨끗하게 먹으라고 계속 눈치를 주며 가자미 눈으로 째려보았다. 동생은 옆에서 자연스럽게 "이제 내 배가 언니보다 많이 나온 거 같아"라고 했다. 전날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밥 먹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배려와 존중이 없는 막말 대잔치를 끝내지 못하겠으면 가족끼리 안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느끼기에 가족들은 나를 무시하는 말을 언제나 습관처럼 한다. 맘 같아서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그럴 수 없었다. 방에서 혼자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는 소금강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엄마가 최근에 새로 구매한 선글라스가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과거 선글라스가 엄마에게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동생은 "그 선글라스 왜 샀어?"라고 물어봤다. 엄마는 갑자기 분노 섞인 억양으로 "너 때문에 비싸게 주고 샀는데 네가 싫다고 해서 내가 쓴 거잖아"라며 나를 향해 말했다. 동생은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반복적으로 물어봤고 엄마는 점점 더 격양된 목소리로 '너' 때문이라 말했다. 그 말에 "지겨워 진짜"라고 말해버렸다. 엄마는 "사실대로 말하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너 기억력 없는 걸로 나한테 대항하지 마"라고 했다. 난 참을 수 없어 그 자리에서 일어나 폭염으로 달궈진 차로 가버렸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또 혼자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여행을 울면서 끝내기엔 나이가 너무 들어버렸다. 최대한 머리를 백지장으로 만들려 했다. 그렇게 겨우 나머지 시간을 버텨내며 여행을 마쳤다. 집에 도착하자 짧은 탄식이 쏟아졌다. "휴.." 한 명 겨우 지낼 수 있는 이 오피스텔 한 칸이 내게 안식처가 되었다. 여기가 천국이었다. 생각할 에너지도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짐정리만 마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다시는 이런 취급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고 단호하게 내 영혼이 말 한마디에 죽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해야 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도 옛날 같으면 동생이랑 나 모두에게 막말했을 텐데 동생이 결혼하고부터 제부가 있으니 동생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존중받으려면 결혼을 해야 하나보다. 이런 참담할 때가.. 

 

다음 가족여행이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규칙을 정해놔야겠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단점을 잡고 늘어지지 않기! 남이라고 생각하고 대화하기! 가족끼리 규칙으로 정해야 정상적인 대화가 된다는 게 참담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서로 기분 나쁜 곳을 후벼 파는데.. 이런 게 가족이라니.. 맘이 아팠지만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죄된 본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의지를 갖지 않으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