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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이 직업이 나에게 맞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인생조각 2024. 8. 24. 19:13

전업 작가로 사는 삶이 적성에 맞을까? 직업으로 선택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단지 부업으로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였다. 이런 묵직한 고민에 대한 답을 여기저기 서치해봤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추천한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작가가 되는 삶은 어떨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할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고 했다. 전업 작가를 하려면 어떤 자질과 역량이 필요한지 소설가 입장에서 풀어낸 에세이다. 내 고민을 해결에 적합한 책이었다. 유튜버 말로는 직업이 작가나 소설가가 아니라도 직업의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라 했다. 현재 직업에 의문점이나 권태기를 겪고 있는 사람도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이 또한 지금 내 상황에 해당된다)
 

책 표지

 
구매하기로 작정하고 서점에 갔다. 책 제목을 처음 들어봐서 인기 있는지 몰랐는데.. 서점에서 잘 나가는 책들이 놓인 가판에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표지를 보고 너무 읽기 싫었다.. 너무 진지하고 재미없게 생겨서.. 사자마자 읽지 못하고 2주 정도 지난 뒤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읽는 데 이유가 있겠지.. 용기 있게 책장을 넘겼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그는 매우 유명한 소설가였다.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알만한.. 일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유럽, 러시아 등등 총 50개 이상의 언어로 그의 책들이 번역되었다. 그래서 제목을 담백하게 지었나? 싶었다. 그 어떤 기교도 없는 제목이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미 그의 이름만으로도 인기 있을 책이었나 보다. 1949년생 교토에서 태어났고 미국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한 사람이다. 적지 않은 나인데.. 젊은 사람들도 이 사람 책을 많이 읽는다고?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고집이 엄청나던데.. 나랑 맞을까? 걱정도 됐지만 오랜 기간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1981년부터 소설을 썼고 1979년 <<군조>>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87년에 <<노르웨이 숲>>으로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우며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단단한 핵심 독자층이 형성됐다. 그는 일본 호황기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작가다. 한때 일본은 돈이 남아돌 정도로 호황기였다. '일본 작가'에 대한 선입견? 도 있었기에 두려운 마음이 컸다. 일본인들은 장인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래서 비교적 고집이 강하다고 느껴진다. 고집이 있어야 장인정신도 발휘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호다. 일본 애니메이션들도 독특하긴 한데.. 내 감성과 맞진 않았다. 작품에서 지엽적이고, 난해하고, 고집스러운 성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역사 문제에서도 일본의 태도를 보면 막혀있단 느낌이 든다. 아무튼.. 그래도 여러 나라 독자에게 사랑받았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읽어보자.
 
"뭐 직업으로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자질들을 적었겠지"라는 마음으로 목차를 봤다. 근데 너무나 예상치 못한.. 제목들이었다.. 부분적으로 제목을 통해서 뭘 말하고 싶은지 가늠이 안 됐다. '제3회: 문학상에 대하여' '제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하여' '제8회: 학교에 대하여' '제12회: 이야기가 있는 곳 - 가와이 하야오 선생님의 추억' "이건 뭐지?? 직업으로서 소설가가 뭔지 이야기 한다며?ㅋㅋ" 목차가 책의 길잡이가 되지 못한 느낌? 이 들었다. 맨 뒤에 '후기'라는 이름으로 작가가 적어놓은 부분을 먼저 보니 이제야 좀 이해가 갔다.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소설가로서 한자리에 정리해서 말하고 싶은 마음이 예전부터 있어서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 그런 글을 조금씩 단편적으로 테마별로 써서 모아두었다. 즉 이건 출판사에서 의뢰를 받아 쓴 글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말하자면 나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다."(329p) 
"이 책은 결과적으로 '자전적 에세이'로 분류될 듯한데, 처음부터 그렇게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내가 소설가로서 지금까지 어떤 길을 어떤 생각으로 걸어왔는지,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적어두고 싶었을 뿐이다." (332p)
"이 책이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이 될 수 있을지 어떨지, 솔직히 나도 그것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도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서 내 글쓰기 방식이나 삶의 방식에 과연 어느 정도나 일반성. 범용성이 있는지 나 스스로도 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333p) 
 
보아하니.. 자신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정리하던걸 chapter별로 모아서 발행했나보다. 소설가라는 직업에 오래 종사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들이 있었고 그걸 자기 방식대로 정리한 듯했다. 나도 추상적인 문제와 개념을 계속 생각하고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자는 어떤 개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도 내 직업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물론 지금은 제2의 직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중이지만.. 지금까지 약 10년간 이 일을 위해 달려왔고 종사해 왔다.) 내 직업적 성격과 정반대 편에 있는 소설가라는 직업도 궁금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제1회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라는 제목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가 포용적이라는 통념이 있나? 생각해 보니 마음이 넓고 포용적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사를 잘 이해하니 이를 소설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마 이런 질문을 저자는 많이 받았던 거 같다. 나도 수학과라는 이유로 수학적 계산이 빠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수학과 산수는 엄연히 다른데.. 아직도 암산이 왜 이렇게 느리냐고, 계산기가 할 일을 나한테 시켜보는 경우가 많다. 굉장히 골치 아프고 지겨운 일이다. 이걸 하나하나 설명하자니 너무 길고..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저자도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무튼 앞서서 했던 걱정과 달리 문장은 짧고 글은 술술 읽혔다. 전혀 어렵지 않고 전문적이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무겁지도, 고집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럽고, 솔직. 담백했다. 좀 안심이 됐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소설가는 이러하다.
 
"작가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인종이고 역시 자존심이나 경쟁의식이 강한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직업에서의 영역 배타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소설가만큼 넓은 마음을 갖고 포용력을 보이는 인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설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에 링에 들어오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소설가들도 이를 반갑게 생각한다. 이건 소설이 가지는 강점이다.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다고 한다.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 맞지 않다. 스토리를 풀어간다는 것은 저속의 기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예시와 스토리로 계속 무언가를 풀어내는 일이기에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작업이다.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충동, 장기간에 걸친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이 소설가의 자질이자 자격이다.
 
[데이터과학자 관점]
데이터과학자라는 직업에는 어떤 편견이 있을까? 분석하길 좋아하고,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개인적인 답을 하자면 맞다. 나는 모든 문제에 원인과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와 상황에서 본질을 찾아내고 집중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려 한다. 그리고 호기심이 참 많다. "왜 이럴까?"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소설가와 달리 이 직업은 진입장벽이 있다. 바로 '수학'이다. 기본적으로 회사 동료들은 거의 다 '수학'을 좋아한다. 어릴 때 수학을 다들 잘했고 좋아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직업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그 어려운 걸 하냐고 다들 놀라 하는 거 외에 기본적인 '통념' 같은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가와 비슷한 특징도 있다. "원인을 다각도로 찾고자 하는 끈기, 인내력" (결국 데이터로 원인 파악이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제외하고) 귀찮아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 직업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원인을 찾기 위해 퇴근하고도 자발적으로 하루종일 고민한 적도 많다..(결국 정답이 아닐지라도)
 
[작가 관점]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런 표현이 매우 새로웠다. 10년 넘게 꾸준히 글을 쓴다는 거 자체가 경이를 표할 일이라는 부분에서 거북이가 생각났다. 느리지만 꾸준히, 어떤 피드백이 없더라고 나답게 글을 써 내려가는 고독한 작업... 거북이는 그렇게 느리지만 삶을 오래 지속한다. 나는 속도가 느리고 두뇌 회전이 빠르지 않은 사람이다. 오래 참고 인내하는 건 나랑 잘 맞는 거 같다. 오히려 지금 직업이 트렌드와 변화에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그게 버겁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저속기어로 무언가를 계속 풀어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논리적 사고가 기본인 나에게는 좀 버거울 거 같다.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 쓰는 게 적합할 거 같다. 거기에 가끔 스토리를 녹이는 정도? 난 확실히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머릿속이 비워지고 정리된 느낌이 든다.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고 그걸 검증하길 원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삶이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이게 글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인 건가? 
 
하루키라는 사람은 1949년생답지 않게 귀여웠다. 책 중간에 웃긴 어투들이 있었는데 'ㅋㅋ'을 달아놨다. "(왜 결혼 같은 걸 했는지,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생략하고)" "당시의 상황이 그랬다고 할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할까, "사회 스스템에 꼬리를 흔들고 싶지 않다" "생각하는 바를 얘기하기가 상당히 어렵군요" 이런 문장들이 상당히 귀여웠다. 구구절절 오해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적어둔 말들도 웃겼다. 하루키는 어쩌다 보니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는 사람이었고 작가가 될 생각은 딱히 없는 사람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고 소설가가 됐다. 아무래도 소설가들은 문학상에 관심이 있다보다. 그래서 문학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풀어쓴 부분이 있는데 요약하자면 진심으로 문학상에 관심 없다는 말이었다. 이를 장황하게, 그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적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어린아이 같은 문체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대한 솔직하게 요약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날 것으로 풀어낸 느낌이랄까.. 재밌었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을까?. 나랑 맞지 않은 작가일 가능성이 높은데?와 같은 우려는 저 멀리 날려버렸다. 오히려 참신했다. 그는 일본이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거나 원전 문제를 수치적이고 효율적인 접근만 할 때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3장까지 읽으니 저자에게 신뢰가 갔다. '참된 작가'가 무엇인지 나름 정리해 둔 문장도 인상적이었다. 글 쓸 때 중심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문장인 거 같다. "자신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 그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해 주는 독자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실감입니다." 
 
[직업에 대한 고찰]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오래가는 거 같다. 데이터과학자라는 일 자체에 완벽히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원인을 분석하고 찾는 도구가 있고 최적화해나가는 과정이 재밌긴 하다. 하지만 그 일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려운 시기가 지금 온 거 같다. 나도 하루키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이다. 회사에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구조는 온전한 몰입을 방해한다.(그 전에는 이 구조가 주는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고 소통하는 느낌이 없다.. 즉, 인간적인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배제돼있다. 과거에 난 로봇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부분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으로서 충만해지길 원하고 그걸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정체성이 과거보다 크게 자리 잡아 가는 듯 하다. 지속가능한 삶, 인간적인 삶, 자연스러운 삶 말이다.. 저자도 글 쓰는 게 아무리 재밌고 즐거웠어도 자기 자신과, 남에게 긍정적 효과를 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없었으리라... 인간이기 때문에,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확립하고 성장하길 원한다. 토끼가 넓은 풀밭에서 풀을 뜯어먹고, 번식하고, 굴을 파는 일과 같다.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를.. 지금 내 직업으로 채울 수 없다.. 다른 일과 병행해야 한다. 성경 말씀을 보고, 달리기를 하고 있지만, 글도 써야 할 거 같다. 이렇게 다른 것들을 하다 보니.. 본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점점 줄이고 싶다. 데이터과학자를 부업으로 해야 할 거 같은데?.. 흠.. 하지만 좀 더 신중하기로 한다. 저자도 제즈바를 운영하는 게 본업이었다가 소설이 뜨고 나서 본업을 소설가로 바꾼 사건처럼.. 내가 작가로 소질이 있는지.. 증명받을 필요가 있다.. 아니 어쩌면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평범한 직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제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106p)
"내가 쓰는 소설에 오리 지낼 리 티라는 게 있다면 그건 '자유로움'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8p)
"그때 당시의 내 마음의 본모습을 비춰내는 내 나름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108~109p)
"만일 당신이 뭔가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110p)
"오리 지낼 리 티란 무엇인가, 그것을 말로 정의하기는 몹시 어렵지만 그것이 몰고 오는 심적인 상태를 묘사하고 재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는 가능하다면 소설을 쓰는 일로 그러한 '심적인 상태'를 내 안에서 다시 일으켜보고 싶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로 멋진 기분이기 때문입니다" (113p)
 
[직업에 대한 고찰]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상황에서 즐거워하는 일은 뭘까? 나는 본능적으로 분석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상황을ㅇ 분석한다.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건 멈출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데이터과학자가 됐다. 근데 그런 일이 또 생겼다. 글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 자연 다큐멘터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거기 나오는 동식물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들은 자기 본연에 충실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비교적 그렇게 살고 있는 편이지만 (위에서 말했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몰입하고 하고 싶은 일이 여러 개 있는 건 복일지도 모른다... 저자도 번역일과 작가일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까.. 번역하는 일이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고 글 쓸 때, 자신만의 문체를 만드는데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글 쓰는 일과 수학적인 일은 정반대에 있기에 머리 식히기에도 좋다. 사고를 다양한 관점에서 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느껴보진 못했지만) 단지..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어.. 본업에 절대적으로 시간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제5회 자, 뭘 써야 할까?
"나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지, 그것조차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자'라고 마음을 먹고 그러기 위해 특별한 공부를 했다거나 훈련을 받았다거나 습작을 거듭하는 단계를 밟았다거나 해서 소설가가 된 것이 아닙니다" (117p)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습관, 훈련이 뭘까? 1) 책을 많이 읽는 것 2)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 3)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 (119p)
"각 세대는 뭔가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각자 '잘하는 분야'를 척척 전면에 내세우면 됩니다. 자신이 잘하는 언어를 무기로 삼아서 자신의 눈에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자신이 쓰기 쉬운 말로 써나가면 되는 것입니다."(138p)
 
[직업에 대한 고찰]
하루키는 10대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아무리 살기 바빠도 항상 짬을 냈다. 자연스럽게 그가 갈망하는 행위를 하다 보니 소설가가 되어있었다. 어떤 직업에서나 마찬가지인 거 같다. 기술은 나중에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다만 일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역량들을 본능적으로 지향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면 이 직업에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끝까지 해결하고 나면 내가 더 건강해지고 사람다워진다는 '실감'을 느낀다. 특히 삶의 문제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루키의 첫 작품이 주목받았던 사건처럼.. 나도 교회에서 상담해 주고 조언해 주고 살아내는 모습을 보였을 때 큰 영감과 도전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일들이 쌓여 내 말과 글에 공감할 누군가가 있을 거란 '실감'을 느꼈다. 그냥 내가 신앙을 대하는 방식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렇게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볼 줄 몰랐다. 도움을 받는 누군가가 있을 줄도 몰랐다. 주변에서 책 써보라고 할 때 글쓰기를 시작해 볼걸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한 게 어딘가.. 누가 알아주던 아니던.. 뭔가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고 그대로 따라가면 될 거 같다. 괜히 머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데이터과학자는 계속해야 할 거 같다.
 
(제6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 - 장편소설 쓰기, 7회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 한 업)에서는 그 길고 긴 장편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소개한다. 초고 -> 수정 (크지막한 맥락 수정) -> 수정 (디테일한 수정) -> (제삼자에게 검토받기 -> 수정) 반복 -> 편집자에게 제출이라는 방식을 취한다. 글은 일본이 아닌 곳에서 하는 걸 선호한다. 쓸데없는 생각 없이 집필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기간 동안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1시간 달리기를 꼭 하고 하루에 글은 5시간만 쓴다. 나머지 시간에는 쉬거나 번역일을 한다. 전반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너무 나랑 비슷해서 놀랐다. 그리고 가장 와닿았던 건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도 순간순간 후회 없이 사는 게 목표다. 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 '완벽'이 목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인생에 후회가 없고 그렇게 쌓아온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하루키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진 않는다. 자기 정화, 자기 치유를 본능적으로 추구한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고 한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정리되고 중심을 잡아가는 느낌이 들었던 나로선 매우 공감됐다. 여러 작가들이 이런 말을 한다. 그래서 지속가능하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에서 뒤틀린 모습을 잡아준다... 작가가 본업인게 부러웠다. 내 직업은 자기 치유적인 성격이 없어서.. 정화작용이 되는 활동이 항상 따로 필요한데.. 직업 자체에 자기 치유적인 성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일에 푹 빠져도 자기 파괴적이지 않을 테니.. 그게 제일 부럽다. 
 
(그 뒤에 있는 8 ~ 12장까지 내용도 다 비슷한 맥락에서 작성된 내용들이어서 생략하겠다. 앞장에서 임팩트를 많이 받기도 했다.)

전체적인 느낀 점

하루키는 어떤 유명한 작가 글을 참고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자기만의 글을 써가다 보니 독자들이 좋아해 줬다. 자신만의 문체, 글 전개방법들을 개척했다. 그게 저자의 지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려면 어떤 포맷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비교적 자유롭게 느낀 점들을 적어도 좋을 거 같았다. 꼭 딱딱한 형식에 맞추지 말고.. 주저리주저리도 괜찮으니까 솔직하고 현실감 있게.. 그게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도 속단하는 걸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인데.. 그런 생각까지 글자로 다 표현한 게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항상 남 앞에서 자신감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그게 어려웠다.. 100% 확신하지 않으면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데이터과학자라는 직업도 함부로 확신하면 안 되는 직업이다. 데이터로 완전히 증명되기 전까지 결론을 내서는 안되고 데이터로도 완벽히 맞다고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 디테일을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성향과 직업은 80%는 맞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 일을 해온거 같다.. 
 
하루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이다. 자기만의 정체성이 있고 이를 굽히지 않았다. 세상이 뭐라 하든 자기만의 방식대로 삶을 개척했다. 그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대해서 8장에 적었던 내용이나 전체적인 문맥에서 묻어나는 표현을 보더라도 그랬다.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규칙적인 삶을 유지하려고 함, 달리기를 좋아함, 나만의 개성과 정체성이 있다는 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점, 집단에서 생활하기 어려워한다는 점. 단, 나랑 다른 점은 하루키 글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됐다."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내 인생에서 '그냥'은 없었다. '그냥'이었다고 해도 왜 그렇게 됐을까를 고민해 보는 타입이다. '그냥' 됐으니 넘어가지 뭐..라는 성격은 아니다. 하루키가 많이 쓰는 단어가 '실감'이다. 현실적인 '실감'이 중요하고 그걸 느끼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했다. 이런 식이다. 솔직히 옛날의 나 같았으면 진짜 싫어했을 문장이다. 그래서 문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원래 천재성을 타고나서 일이 잘 풀린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뭔지 모르니 상당히 답답했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말하면 어떻게 아냐.. 화가 나기도 했었다. 나는 절대 그렇게 표현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근데 이제 나이도 들었고, 나만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서 그런지, 그 과정을 직접 겪었어서 그런지.. 하루키가 그렇게 표현한 의미를 대략은 알 거 같았다. 나도 많이 성장했고 변했구나 싶었다. 하루키의 정신세계를 훑고 나온 기분이었다.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하면 이 정도 깊이로 대화하긴 어렵다. 차라리 책 한 권을 읽는 게 그 사람의 가치관, 사상, 관점 등을 알기에 좋은 거 같다.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재밌고 신비로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니 하루키 소설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읽을지는 모르겠다.. 장편 소설은 아직 나에게 버겁다.. 또 읽어야 할 책이 워낙 많아서..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읽어봐야겠다. 담백하고 솔직한 그의 문체는 다른 작가의 것과 달랐다. 지경이 넓어진 느낌이었고 책 읽기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방법보다 나만의 문체, 결을 만들어 내는 게 더 중요할 거 같다. 독자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목차도 좀 덜 직관적이라도 괜찮다. 글도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도 괜찮다. 좀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느껴보자. 무언가를 관찰할 때 내 관점, 생각, 판단을 기억하기보다 있는 현상 그대로를 기억해 보자. 그걸 나중에 다각도로 해석해 보자. 재즈를 좋아해서 재즈바를 열었지만 결국 소설이 성공하는 바람에 소설가가 된 하루키처럼 나도 우선 지금 본업에 충실하고, 작가로서 정체성이 세워지고 누군가 알아봐 주는 날이 온다면 그때 직업을 바꿔도 괜찮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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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교보문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실하고도 강력한 사고의 궤적.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키스트’라는 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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