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었다. 아침부터 머리가 아팠지만 힘든 몸을 부여잡고 서점으로 향했다. 에세이 쓰는 법이 궁금해서 관련 책을 사고 싶었다.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을 보니 이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한 권의 책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을까? 과거엔 비평가로서 책을 봤다면 이제는 한 사람의 인생과 노력의 산물로 보였다.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역경을 지나며 살아왔을까? 그러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나는 글쓰기 전문가도 아니고, 해본 적도 없는데 글쓰기로 먹고살 수 있을까? 객기를 부리는 건 아닐까? 초반에 열정 가득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부족한 내 모습만 보였다. 나이 먹고 꿈을 꾸는 게 부끄러워졌다. 지금 직무를 바꾸는 건 다시 대학생 때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갓난아이 같은 모습처럼 말이다. 매서운 현실에 쉽게 상처가 날 것이고 이를 이겨낼 각오를 했야 했다.
하필 오늘따라 허탕 치는 일이 많았다. 가고 싶던 식당이 break time이었고 처음 방문했던 서점에 원하는 책이 없어 다른 서점을 가야 했다. 인터넷에 재고를 검색해 볼 수 있었지만 만사가 귀찮아서 그러지 못했다. 이 상황이 앞으로 회사라는 울타리를 떠나면 마주할 모습이 아닐까? 지금은 나답게 살고 싶어서 퇴사를 결정한다 해도 오늘처럼 매번 허탕인 하루를 견뎌낼 수 있을까? 나중에 나도 성공한 여러 사람들처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 인생은 그래왔는데 앞으로의 인생도 그럴 수 있을까? 이렇게 눈덩이처럼 커진 두려움은 내 도전과 열정을 어리석게 만들었다. 과거에 겪은 고난들은 비자발적이었지만 이번에 내가 겪을 고난은 자발적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 더 나은가? 그렇지 않다.
나는 굉장히 오랜만에 감정 널뛰기를 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이렇게 혼란스러울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있다. 20대 중반에 그 고난들을 전부 이겨내고 승화시켰던 경험이 있다. 그때처럼 또다시 생각을 정리한다. '내 나이는 아직 어리다' '평생직장은 없으니 어차피 언젠간 프리랜서를 하든 사업을 하든 해야 한다 그걸 남들보다 빨리 시작하니 얼마나 현명한 선택인가?' '펄스널 브랜딩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내 또래보다 그걸 용기있게 먼저 시작하고 있다' '언젠간 넘어야 할 산인데 먼저 넘고 있다' 그러니 좀 진정이 됐다. 이 두려움은 절대 날 놔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난 작가가 되는 걸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글 쓰는 일은 소모되지 않고 채워준다. 채워지며 일할 수 있다면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는 어려움과 실패가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게 한다. 오히려 좋은 글감이 되게 한다. 그 점이 제일 좋다. 쓰레기로 오염된 지구를 위해 *새활용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이 일이 여전히 즐겁고 나에게 의미있는 일이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려고 했을 것이다. 근데 이젠 아니다. 그러니 두려운 마음이 따른다.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되어야 하고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가가 좋을 수 없다. 평가가 좋지 않으면 커리어에 흠집이 잡힌다. 이 두려움은 새로운 시도와 배움을 막는다. 그렇게 나는 점점 짓눌린다. 위가 아픈 이 삶을 청산해야 한다!
*새활용이란?
새활용(-活用) 또는 업사이클(영어: upcycling 또는 creative reuse)은 부산물, 폐자재와 같은 쓸모없거나 버려지는 물건을 새롭게 디자인해 예술적·환경적 가치가 높은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재활용 방식이다. (위키 출처)
'일상 > 매일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 데이터과학자, 진짜 그만 둘 것인가? (0) | 2024.07.30 |
---|---|
[일상] 군중속의 고독 (2) | 2024.07.29 |
[일상] 혼자 사는 여자가 창문을 닫으려면.. 결혼 해야 하나? (2) | 2024.07.28 |
[일상] 알던 사이지만 새로워진 관계 (2) | 2024.07.27 |
[일상] 퇴사할 때가 된걸까? (feat. 중간평가) (2) | 2024.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