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서 상처와 아픔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별 문제가 없었다면 결혼해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얘기지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난 20대에 1번 연애했고 그 뒤로 없었다. 연애하면서 받았던 상처는 생각보다 매우 깊었다. 빨리 이 상처를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하면 이 아픔들도 괜찮아질 것 같았다. 가장 힘들 때 주변 조언들은 하나같이 가벼웠다. "남자는 남자로 치유해야 해" "그낭 잊어버려" "시간이 약이야" 등등.. 한숨만 나왔다. 마약처럼 잠시 내 맘에 위로를 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 건강과 정신을 해치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언을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도 진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나 같이 연애의 아픔속에 허우적거리지 않길 바란다. 연애할 당시 하나님 안에서 연애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 같다.......
대부분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한 연애는 결혼까지 간 연애다. 성공한 결혼은 이혼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혼하지 않았어도 불행한 결혼 생활이 있고 결혼까지 간 연애를 했어도 결혼해서 이혼하거나 불행한 결혼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건 지금이나 옛날이나 비슷하다. 진정한 기쁨과 사랑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고 죄인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이렇게 서로 좋아하는데 왜 만나면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에서도 딱히 어떻게 결혼하는 게 맞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각자 결혼한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 맞다고 생각하는 정답을 가르치려 한다. 내가 볼 땐 그것도 정답이 아니다. 정답없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 돼?라는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다. 맞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 하지만 내 가치관에 맞지 않다. 난 죄인인 나는 못 믿었지만 사랑의 힘을 믿었다. 하나님이 결혼을 주신 이유가 있을 거라 믿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이 땅에서 전부 누리다 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정답을 찾고 그 방향에 나를 맞춰야 했다. 당장 내가 편한대로 단순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그건 결국 나를 위한 게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죄인인 두 사람이 만나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거 같은데..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걸까? 맞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섬김이다. 섬기다 보면 행복이 따라올 수는 있다. 하지만 행복이 주된 목적은 아니다. '안전한' 연애라는 개념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죄인 된 두 사람의 만남이 위험하다는 사실에서 온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 값싼 행복에 만족하며 사는 정도일 거다. 왜일까?? 사람은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분의 의로움이 내 의로움이 되고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하게 되어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절대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크리스천이 돼도 이기심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다. 죽어서 천국가지 않는 이상..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우린 천국을 살 수 있다. 난 안전하고 충만한 연애, 결혼을 하고 싶다. 더 이상 서로 찌르는 만남을 하고 싶지 않다.
처음 '섬김'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매우 불쾌했다. 내 인생 스스로 건사하기도 힘든데 뭔.. 섬김이야.. 싶었다. 마음 깊숙히 우러나오지 않았다. 상대를 섬기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다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누리길 원하시는 걸 다 받아 누려야 되니까 그 마음 가운데 주저앉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애를 통해 자기가 이해받길 원하고, 용납받길 원한다. 돈, 명예, 스펙이 아니라도 정서적으로 상대에게 의지하고 기대길 원한다. 나도 상대방에게 이해받길 원했다. 그게 얼마나 스스로를 갉아먹는지 헤어지고 깨닫게 됐다. 그 마음 때문에 상대방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분별력이 흐려지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상황을 왜곡해서 보게 됐다. 그렇게 서로를 찌르거나 누가 일방적으로 참고 감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나 지옥인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하나님은 지옥을 맛보라고 사람관계를 허락하시지 않았다. 천국을 맛보라고 주셨다. 창조질서 대로 결혼을 받아 누리려면 나부터 하나님 안에서 회복돼야 한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만남은 남들이 절대 누릴 수 없는 천국을 누릴 수 있다. 그렇게 (나는 결혼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나부터 하나님을 더 알고 창조 때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지났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 교회 안에서 연애에 대해 너무 무지한 지체들의 상황을 알게 됐다. 그 안타까운 마음이 오늘까지 남아 가수 자두의 강연 기사를 보게 됐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2806
이 기사를 보니 복잡했던 마음이 싹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내 안에 있던 결핍을 하나님 안에서 치료받는데 집중했다. 1. 이전 연애에서 받았던 상처, 전남친과 관계회복 2. 왜곡된 연애관 회복 3. 가족관계에서 받은 상처, 관계 회복. 지금 1,2번은 해결됐고 3번째를 하고 있었다. 난 이제 건강한 연애를 하고 싶다. 서로를 세워지고 섬겨주는 연애 말이다. 과거엔 섬김이 불쾌하게 다가왔다면.. 이제는 진짜 그런 소망이 생겼다. 영원히 한 사람을 섬기는 도전을 하고 싶다. 거기에서 나오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나에게도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다. 이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직면해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아파할 건 아파하며 하나님을 붙잡고 나아갈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됐다. 그 치유가 없었더라면 남자 만날 생각 자체를 못했을 거다. 왜 연애, 결혼을 해야 할까? 상대방을 세워주고 섬기고 싶어서 한다. 내 아픔과 상처, 결핍은 하나님께 치유받자.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 후회 없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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